K-Tango의 바탕을 만들다, 헝얏과 화이
한국의 땅고는 밀롱가와 땅고의 문화에 대한 이해가 시작된 2007년 이전과 이후로 나누어진다. 땅고라는 새로운 문화에 대한 호기심과 열정만으로 불태우던 우리가 어느새 밀롱가로는 전 세계 어디와 비교해도 부끄럽지 않은 수준이 되었다. 이제 아시아를 넘어 유럽에서까지 한국에 춤을 추러 오는 외국인들이 점점 늘고 있다. 어떤 이들은 부에노스 아이레스에 가서 춤을 추는 것 보다 서울의 밀롱가에서 춤을 추는 게 더 좋다고 할 정도다. 서울의 밀롱가가 이런 평판을 얻게 되기까지 많은 땅고 선배들이 앞서 많은 길을 개척했다. 그 중 헝얏과 화이가 있다.
우리나라의 땅고가 2007년 이전과 이후로 나뉜다고 하셨는데, 그럼 2007년 이전에는 어떤 모습이었나요?
그때는 사실 밀롱가 문화에 대해 아무것도 몰랐어요. 2000년 초반에는 유튜브도 없었고 지금처럼 대회가 활성화 되어 있지도 않았지요. 당연 아르헨티나 댄서가 워크샵을 하러 오는 건 정말 드문 일이었어요. 당연히 국내에 전문 땅고 댄서라고 하는 사람들도 제대로 된 교육을 받지 못했었죠. 다들 힘들게 구한 강습 디비디를 보고 동작을 함께 연구하곤 했죠. 가끔 워크샵이 있어도 동호회에서 한명이 배워서 동호회에 가서 알려주는 식이었어요. 수업을 받아야 한다는 인식도 적었고, 그저 밀롱가에 가서 춤추고 놀 수 있으면 그게 다였어요.
밀롱가도 지금이랑 분위기가 완전 달랐죠. 일단 테이블이 없었어요. 벽을 따라서 붙박이 의자가 놓여 있을 뿐이었고, 테이블을 처음 놓았을 때에는 사람들이 춤추는 플로어가 좁아진다고 테이블을 벽쪽으로 밀어놓곤 했어요. 그럼 다시 세팅해 놓고 누군가 다시 밀어놓고 실랑이를 했죠. 딴다와 꼬르띠나도 당연히 없었고요. 그래서 음악도 아무 음악이나 막 섞어서 틀었어요. 듣기 좋은 감성적인 곡은 다 춤췄죠. 팝송도 틀고 가요도 틀고… 디제이가 전문적으로 생긴 것도 나중이었고, 당시에는 시디에 플레이리스트를 넣어 놓고 그걸 틀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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